위 내용은 구원파를 비방할 때 인용하는 대표적인 대목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육신으로 어떻게 살든 구원에는 영향이 가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율법폐기론자로 몰아가는 내용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예수님께 데려왔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죄 없는 자는 돌로 치라고 하였고 양심의 가책을 받은 사람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떠난 후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리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당부하셨다(요 8장). 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은 모두 죄인이라는 것과 예수님은 율법의 심판을 넘어서서 죄를 사해 주셨다는 것, 그리고 죄를 사함 받은 그리스도인은 죄를 이겨나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 또한 예수님과 같은 말을 남겼다.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0-3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 6:1-2)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갈 5 :13)

이런 성경의 기본 교리를 잘 이해하고 있는 기독교복음침례회가 율법폐기론이나 도덕폐기론을 주장할 리 없다. 고 권신찬 목사의 자서전에도 이 문제는 명백히 해명되어 있다.

단행본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p.103
“그러면 내가 여태껏 고민해 왔던 마태복음 22장 39절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라는 율법을 나는 할 수 없었는데 예수께서 내 대신 하신 것이 되지 않는가. 그러면 이제부터 죄를 함부로 지으면서 살아도 상관이 없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율법이 나를 구속하지 않아도 성령이 인도하시니 함부로 방종의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구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외인을 향하여 단정히 행해야 하고,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본이 되는 생활을 해야 하며, 가족과 부모를 돌보고, 율법을 폐하는 입장이 아니라 율법을 능가하는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받았다는 점은 많은 설교에도 아주 명백하게 제시되어 있다.

2000년 3월 24일, 로마서 강연(7회)
눈으로 범죄한 것이나 행동으로 옮긴 범죄나 원인은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을 율법은 말합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마 5:17) 한 예수님 말씀을 봅시다. 안팎으로 단단하게 만드셨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으로 죄를 깨닫고 율법으로 죄인이라 하는 것 알고 율법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쟁취했다면, 주님을 믿게 되었다면, 믿어졌다면, 이 율법이 우리에게 교훈이 됩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롬15:4) 하신 말씀대로 우리는 이것을 가지고 우리 가족들에게, 우리 나머지 사람들에게 가르치게 될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나라 헌법을 다 모릅니다. 그러나 거기에 준해서 살아가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 아닙니까? 세상 사람들이 자기 나라 국법의 질서를 어기려고 하지 않고 정확하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그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이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성도를 사랑하는 이것은 율법을 능가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힘을 안겨다 주신 것입니다. 율법을 폐하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해 주셨습니다.